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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가카게] 카게른 전력 '꽃'

슼캌처돌이 2016. 5. 15. 21:57

아, 후리지아다.

이제는 날이 제법 풀려 모처럼 점심 산책을 하다가 반가운 모습을 보았다. 아직은 수줍은 봉오리지만 금방 노란 빛깔의 미소를 팍 터뜨릴 것이다. 스가와라는 어느새 후리지아 한 단을 사들고 꽃집을 나서고 있었다.

아직 카게야마가 고등학생일 때였던 것 같다. 같이 산책하던 중 묘하게 뒤처진다 싶었는데, 입을 삐죽 내밀고 유심히 바라보고 있는 것은 바람에 살랑살랑 흔들리는 이름 모를 들꽃이었다. 카게야마, 꽃 좋아해? 하는 물음에 카게야마는 약간 부끄러운 듯 고개를 슬쩍 끄덕였다. 그래서 데이트 때 종종 장미를 선물했던 거구나. 단순히 '연인에게는 꽃을 선물한다'는 통념에 따른 행동이 아니라, 본인이 좋아하는 것을 나누고 싶은 마음에서 기인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게 된 스가와라는 벅차오르는 마음에 카게야마를 꼭 끌어안았다. 살짝 입을 맞추기도 했었던 것 같다.

사실 원래 꽃을 좋아하는 편은 아니었다. 어린 연인이 자신을 위해 주는 선물이었기 때문에 기쁘게 받아들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그 날부터, 스가와라는 꽃을 좋아하게 되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카게야마가 좋아하는 꽃이 좋아졌다. 그러고보면 사람의 마음이라는 건 참 사소한 계기를 통해 알 수 없는 방향으로 움직이곤 한다. 카게야마에 대한 마음도 아마 그랬던 것 같다고 스가와라는 생각했다. 카게야마는 꽃이라면 가리지 않고 좋아하는 편이었지만 그 중에서도 수국이나 캄파넬라 같은 꽃들을 가장 좋아했다. 푸른 계열은 카게야마의 바다색 눈동자와 제법 잘 어울려서, 일부러 색을 맞춰 제작한 프로포즈 꽃다발을 안기고 찍은 사진은 아직까지도 마음 속의 베스트 샷이었다.

집에 있는 꽃병 두어 개는 둘 다 집을 오랫동안 비우지 않는 한 다양한 꽃들로 채워져 있곤 했다. 이제 그 중 하나는 후리지아가 알리는 봄 소식으로 장식될 것이다. 아아, 빨리 가서 보여주고 싶다. 꽃을 선물할 때마다 변함없이 얼굴을 발갛게 물들이고 좋아하는 카게야마를 떠올리며 절로 애타는 마음을 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