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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츠키카게] 카게른 전력 '연극'

슼캌처돌이 2016. 6. 6. 01:13

"츠키시마."
"뭐야?"
"전혀 모르겠어."
"하...."

문제집을 붙잡기 시작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기브업이냐. 카게야마 혼자 끙끙대며 생각해봤자 정답에 가까워질 리가 전혀 없다는 걸 숱한 경험을 통해 뼈저리게 깨달았기 때문에, 모르는 게 있거든 제깍제깍 말하라고 했던 건 츠키시마 자신이긴 했다. 그래도 허탈함에 바람 빠진 소리가 나오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너, 내가 그동안 가르친 건 대체 뭐였던 건데.

입을 삐죽 내민 카게야마가 자기 쪽으로 밀어놓은 문제집의 지문에는 연극 대본이 실려 있었다. 어느 작품에서 따 온 건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사랑하던 두 사람이 죽음 때문에 갈라진다는 건 대충 봐도 파악할 수 있었다. 그리고 제시된 문제는 다음과 같았다. '마지막 남자의 대사로 어울리는 것은?' 아, 역시나.

카게야마는 문학에 약했다. 특히 '등장인물이 느낄 감정으로 알맞은 것은?' 하는 식의 문제는 거의 다 틀린다고 봐야 했다. 아무래도 공감 능력의 문제겠지. 지금까지 인간관계가 서툴렀던 것도 아마도 그 탓이 아니었을까 싶은데, 한창 사이가 나쁘던 때에는 질색을 하면서 비꼬기도 했더랬다(왕님이라 서민들 생각을 알아보고자 하는 의지조차 없는 건가요 그런 건가요?). 이제는 안다. 사실은 자신의 감정을 인식하는 것조차 서투른, 더 답 없는 녀석이었던 것을. 이런 녀석한테 연애감정을 끄집어내 자각시키는 대단한 수고를 들였었다니 나는 대체 무슨 쓸데없는 짓을 한 걸까. 츠키시마는 별 영양가 없는 후회를 하며 입을 열었다.

"역지사지."
"역... 뭐?"
"너... 분명 지난 중간고사 때 가르쳐 줬었어. 기억해 내."
"으........"

제대로 대답하지 않으면 더 이상의 진전은 없다는 굳은 의지를 표명하듯, 츠키시마는 팔짱을 끼고 카게야마를 지긋이 내려다보았다. 잠시 끙끙대던 카게야마가 정답을 내놓았다. 외우는 건 그나마 해내니 정말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래, 입장 바꿔서 생각해 보란 얘기야. 내가 이 상황에 있다면, 이런 말을 들었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하고. ....아마 너한테는 그것도 쉽진 않겠지만."
"....좀더 구체적으로 말해줘."

카게야마와의 연애를 통해 확실하게 얻은 건 끈기와 인내심일 거라고, 츠키시마는 다시 한 번 생각했다. 이왕 하는 거 제대로 가르쳐주고 말리라.

"토비오."

낮게 깐 목소리에 카게야마가 화들짝 놀랐다. 시뻘개진 얼굴로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츠키시마는 최대한 감정을 실어 대본을 계속해서 읽어나갔다.

"당신이 나라는 사람이 존재했다는 사실조차 전부 잊어버렸으면 좋겠어. 사랑했던 기억, 좋았던 기억만 남겨둘 수 없다면 아예 다 지워버리고 상처받을 일 없이, 그렇게 행복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방금 좀 괜찮게 읽었던 것 같은데. 조금 뿌듯한 마음으로 고개를 들었더니 웬걸, 카게야마가 눈이 그렁그렁해져서는 와락 달려들었다.

"무슨 바보같은 소리야! 평생 기억할 거야 죽을 때까지 기억할 거야!"
"...... 정답."

타이밍 좋게 스륵 내려간 안경을 굳이 고쳐쓰지 않고 벗었다. 가끔 뭔지도 모르고 와락 피어오르는 감정을 솔직하게 쏟아내는 게 귀여워서 견딜 수가 없다. 울긴 왜 울어, 바보 왕님. 난 불안해서 너 두고 먼저 못 죽거든.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기분이 되어, 달래듯 입술을 겹쳐 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