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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Tarantella (1)

슼캌처돌이 2017. 5. 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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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antella (1)

 

 

 

오이카와 토오루 x 카게야마 토비오

 

 

 

 

거장은 언젠간 스러지고, 새로운 재목의 출현은 누구나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다.

 

가능성을 보이면 보일수록 무섭게 짓누르는 기대에 마지막까지 부응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지만, 오이카와 토오루는 다행히도 여기에 속했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 화려한 외모와 사교적인 성격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그렇게 떠오르는 신예 피아니스트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던 그는, 막 상한가를 치자마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휘자로 전향을 시도했다.

 

지휘가 그의 오랜 꿈이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본인이 협연하는 곡을 맞춰보고 나서도 리허설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며 관람한다던가 하는 등, 바쁜 스케줄 중에도 시간을 쪼개는 열정을 내비치곤 했다. 피아니스트 시절의 명성을 팔아 쉽게도 지휘판에 뛰어들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목소리조차도, 그는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시기가 길게 이어져서는 안 되었다. 이 우려를 가장한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 오이카와는 연필로 스코어에 구멍을 낼 정도로 공부에 몰두했다.

 

큰 기회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도쿄 A 악단의 정기 공연. 상임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계기였다. 어디든 한창 시즌 중이라 쓸만한 지휘자를 급히 구하기 힘들었으며, 때마침 오이카와가 도쿄에 체류해 있던 시기였으니 운때가 맞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날 공연의 컨셉은 '낭만의 밤'이라고 해서, 차이코프스키의 경쾌하고 발랄한 폴로네이즈로 서막을 열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꿈결과도 같은 서정을 노래한 다음,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압도적인 사운드로 마무리하며 청중들환호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지휘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전에도 흔히 연주되는 몇몇 곡들은 틈틈이 공부해 두었는데, 폴로네이즈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곡이 바로 여기에 속했다. 그의 준비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수없이 올라 본 무대였지만 익숙한 피아노 앞이 아닌, 포디움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던 압박감과 설렘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약간의 감상을 뒤로 하고 오이카와는 메인 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 앞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들었다. 비교적 친숙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어 냉정한 비평이 내려지기 쉽다는 리스크가 있었으나 기대 이상의 훌륭한 공연이었다. 오이카와의 성공적인 데뷔는 비평가들과 팬들을 흥분시켰고, 일본 내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객원으로 여러 오케스트라에 불려다니며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새롭게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B악단에 수석객원으로 취임하기에 이르렀다. A악단과 더불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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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급 악단의 수석 연주자들이 으레 그렇기는 하지만 B악단의 콘서트마스터는 특히 유명했다. 카게야마 토비오. '전무후무한', '백 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한' 바이올린 신동으로 추켜세워지며 세계 무대에도 불려다니며 바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많은 연주자들이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니, 부조니 콩쿠르 1위 없는 2위니 하며 수상 경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워낙 어릴 때부터 유명하던 그의 수상경력은 깔끔하게 제로였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에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치 않았던 탓이었다. 굳이 덧붙이면, 호리호리한 키에 제법 단정하게 생긴 얼굴이 스타성을 더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돌연 스타 연주자 생활을 청산하다시피 했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를 댔지만,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이어진 혹독한 스케줄에 지쳐버릴 만도 하다며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수긍해 주었다. 그래도 아예 음악의 끈을 놓지는 않고 도쿄 B악단의 단원으로 들어간 것이 대략 삼 년 전의 일로, 그 뒤로는 가끔 국내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거나 앙상블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해외 순회공연은 커녕 새 음반을 내는 등의 활동조차 일절 없었으므로, 해외 팬들은 이를 퍽 아쉽게 여겼다.

 

따라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카게야마 토비오의 존재를 모를 리는 없었다. 사실, 분야는 다르긴 해도 자신보다도 더 빠르게, 더 멀리까지 이름을 떨친 이 동갑내기에게는 남몰래 경쟁의식마저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카게야마 토비오의 경우에는... 이 새파랗게 젊은 지휘자가 온다고 했을 때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피아노는 뭐 나쁘지 않게 쳤던 것 같긴 한데, 노상 잔뜩 힘주어 세팅한 머리에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꼴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무엇보다도, 예전부터 묵직한 고전 레퍼토리에 강한 B악단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의 첫 만남은 사전미팅의 성격을 띤, 오케스트라의 주요 인사들 몇몇만 모인 식사 자리에서였다. 상성이 안 맞을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다던 기획팀장도 이 날을 회상하면 '아, 망했다'고 생각했다며 허허 웃을 정도로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여과없이 부딪혔다. 사실 스타일이 안 맞는건 둘째 치더라도 서로 기싸움을 거는 기운이 역력했다. 네가 아무리 오이카와 토오루라도 지휘에 있어서는 병아리 아니냐는 카게야마와, 네가 아무리 카게야마 토비오고 콘서트마스터라고 해도 결국 음악을 이끌어가는 건 지휘자인 내가 아니겠냐는 오이카와의 대결이었다.

 

지금이야 프로그램에 이말저말 참견할 입장은 아니긴 하지만 사실 오이카와는 다소 실험적인 곡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 겉멋만 잔뜩 들었음이 분명한 초짜 지휘자는 벌써 언젠가는 쇤베르크니, 바르톡 같은 걸 하고 싶다며 기어이 카게야마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요즘 젊은 지휘자들은."

 

자기소개할 때를 제외하고는 제 앞에 놓인 접시만 묵묵히 비우고 있던 그가 기어이 한마디 꺼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러 근엄하게 낸 말투다.

 

"겉멋만 들어서 제대로 소화도 못할 레퍼토리 들고 와서 망쳐놓곤 하더라구요."

 

심플한 꽃 몇 송이로 세련되게 장식한 흰 테이블 주변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 그런 경우야 많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몇 없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오이카와가 숙이고 들어가서 끊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긴장의 끈은 더욱 팽팽해졌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누군가가 흡, 하고 들이쉬는 숨소리 외에는 포크와 나이프, 하다못해 물컵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뚝 멈췄다.


"혹시 가벼워보이는 인상이 컴플렉스라 난해해 보이는 음악에 집착하는 건가요?"

"약간 무례하시긴 했지만 그거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알고는 계시겠지만 저희 특기가 모차르트나 바흐인데... (카게야마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끊고 오이카와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았는데, 기본적으로 무덤덤한 그가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기 위한 노골적인 제스처도 취할 줄 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오이카와 씨랑 어울릴지는......."

 

언성만 높이지 않았다 뿐인 날선 대화가 핑퐁처럼 오갔고, 이러다 행여나 큰일날까 걱정한 사람들이 허겁지겁 자리를 마무리했다. 최악의 첫인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