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부실 열쇠 담당이었던 나를 기다려 같이 집으로 가는 길, 기다리느라 더 배고파졌다고 꽁알대는 녀석이 귀찮아 고기만두 두 개를 사서 안겼다. 양 손에 하나씩 꺼내들어 한 입 크게 베어물고는 꾸물꾸물 이상한 표정을 하고야 마는 그 녀석. 


"너 왜 이렇게 예쁘냐?"


아, 요즘 종종 이런다. 뇌에서 생각하는 게 필터링을 거치지 못하고 나도 모르게 튀어나와 버리는 이 당황스러운 순간들. 그러나 의식이 채 제동을 걸기도 전에 또 다른 말이 튀어나온다. 


"너 예뻐."


돌아오는 건 실없는 소릴 다 듣겠다는 듯한 뚱한 표정이다. 


"...뭐래."


더럽게 눈치 없기는.


"됐고 너 지금 먹고있는 거 빨리 삼켜. 키스하게."



< 1번, 고기만두 먹고 있을 때 >




2.


'나이스 스킬!'

'나이스 토스 카게야마! 좋은 데 올려줬잖아 짜식!'


기세 좋게 스파이크를 꽂아넣은 타나카 선배가 넘쳐흐르는 기세를 담아 카게야마의 뒤통수를 사정없이 헝클어뜨렸다. 딱히 1점이 아쉬운 상황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녀석의 기분나쁠 정도로 정밀한 토스가 없었다면 불가능했을 대단한 공격이었다. 


"나이스 토스, 제왕님."


그래도 한 마디 해주는 게 좋겠지 싶어 한 마디 툭 던졌다. 그러자 그 때까지는 그저 흥분으로 발갛게 달아오르기만 했던 얼굴에 꾸물꾸물 미소가 피어올랐다. 

...지금 키스해 버리면 망하겠지?



< 2번, 내 한 마디에 반응할 때 >




3. 


''그' 우시와카의 스파이크를 막은 블로커'라는 타이틀은 명예롭기는 했지만 한편으로는 짐스럽기도 했다. 요즘에는 무려 나를 지목하며 연습 시합을 청해오는 학교들이 있을 정도이니 말 다 했지. 꼴사나운 모습으로 코트에 서고 싶지 않은 욕심이야 있지만 이런 건... 글쎄, 잘 모르겠다.


오늘 상대의 실력은 나쁘지 않았다. 뭐, 내 컨디션도 나쁘지 않았다는 게 안타까운 일이었겠지만. 나도 놀랄 정도로 괜찮은 블로킹이 두 개째 나온 순간 눈을 마주친 코트 밖의 녀석은 정말이지 콧김이라도 뿜을 것 같은 대단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과하게 반짝거리는 눈에, 그래, 입. 저놈의 입을 진짜 그냥....


너 시합 끝나면 당장 체육창고 행이야.



< 3번, 열렬하게 나를 쳐다볼 때 > 





-




카게야마의 꾸물거리는 입을 누구보다도 귀여워하는 건 츠키시마일 것 같다는 망상이 피워낸 아주 짧은 토막들... 

몇 달만의 재활입니다 ^ㅁ^.........

 

Posted by 슼캌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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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2세(아들)는 아빠들 반반 닮아서 신생아 때부터 미친 미모를 자랑함. 아들 잘생쁜거 둘다 알고는 있는데 토비오는 어 우리아들 잘생겼지 ㅇㅇ 이런 느낌이라면 토오루는 헐 우리아드류ㅠㅠㅠㅠㅠㅠㅠ개존자류ㅠㅠㅠㅠㅠ퓨ㅠㅠㅠㅠ 아무리 내가 미남이고 토비오는... 뭐..... 그래 나쁘지않긴 하지만 그래도그렇지 어쩌다가 이런 애가 다 나왔지 으아아아 이런식으로 개난리를 침.

어느 볕 좋은 휴일날 토비오한테 살짝 기대서 그림책 보고있는 일곱살 난 아들을 뚫어지게 바라보던 토오루는 마침내 겁나 비장한 얼굴로 토비오한테 선언하는데...

급: 토비오쨩.. 이젠 인정해야할것같네 아무래도 우리 아들이 나보다 잘생긴것같아...
영: ? 둘다 잘생겼는데요


무심한듯 시크하게 토오루 마음 저격하는 토비오쨩이었다

아무튼 하도 옛날부터 난리를 쳐서 이 집 가족들은 토오루가 아들 잘생겼다고 호들갑 떠는 패턴에 엄청 익숙하긴 하지만 가끔 쫌 짜증날때도 있다

​급: 토비오쨩!!!! 토비오쨩 얼른 일루와봐!!!!
영: 뭐, 왜요?!!! (후다닥)
(교복 처음으로 입어보는 2세 있음)
급: 야 이건진짜..... 완전 작품이네 작품 우리가 대체 뭘 만든거지
영&2세: (어이x)


그리고 애는 토비오 성격만 닮았으면 내가 잘생긴게 뭐 왜 뭐 했을텐데 반은 토오루 섞... 아니 성격은 토오루에 더 가까워서 자기 잘생긴거 넘나 잘알고 적당히 자뻑ㅋㅋ도 있음ㅋㅋㅋ 그치만 토오루아빠의 개쩌는 팔불출력에는 얘조차도 따라갈수가 업따

​급: 아........ 너무한다 세상 혼자 산다 진짜
2세: 토비오쨩아빠 나 멋있어??
영: 어 장난아냐 토오루아빠 너만할때랑 똑같다
급: (정색) 토비오쨩 대체 누구랑 비교해 지금
영&2세: (오?)
급: 2세쨩 자존심 상하게
영&2세:

세계무대에서 뛰는 셀렙들이다보니 종종 가족사진이 '흔한_배구선수부부의_아들.jpg' 같은 제목 달고 인터넷에 돌아다닐듯.. ​이 집안 유전자 쩐다고 다들 난리나겠지 ㅠㅠㅠㅠㅠ

오이카게를 구심점으로 해서 카라스노랑 세죠 동창들이 가끔 한자리에 모이곤 하는데, 2세는 원래부터 삼촌들 좋아하긴 했지만 철들 무렵부터는 아빠들 연애시절 흑역사가 줄줄 나와서 이 자리를 엄청 즐거워함 ㅋㅋㅋㅋㅋㅋ 삼촌들도 2세 엄청 귀여워하는데 애 아직 어릴때에는 누굴 더 닮았네 안닮았네 하면서 카라스노/세죠로 갈려 은근 신경전을 벌이곤 했다

사와무라: 볼때마다 느끼는거지만 2세는 엄청 카게야마 닮았네~
다나카: 그쵸! 가끔 삐죽거리는 입 완전 판박이 ㅋㅋㅋㅋ
이와이즈미: 아 뭔소리야 눈 봐 눈 완전 쿠소카와 닮았지
킨다이치: (끄덕끄덕)
스가: 아니 얘 새까만 뒤통수 보라니까 카게야마네 카게야마야
마츠카와: ㄴㄴ 얘 도야가오 하는거 봤어? 그냥 오이카와라니까

하나마키: 2세쨩 들어봐 나 대학 들어가서 자취한지 얼마 안됐을때였거든? 얘네 대판 싸우고 너네 토오루아빠가 내 자취방에 쳐들어왔는데 한시간쯤 있다가 갑자기 토비오쨩아빠까지 쳐들어와갖고는........ 악 아파!!!
오이카와: 왜 애한테 쓸데없는 소리를 해 하긴!!
카게야마: (말없이 동공지진)


뽕찰때마다 조금씩 추가할듯 ٩( ᐛ )و



+ 170531 추가


옛날에 비해 동성결혼이 보편화되었다고는 해도 오이카게 가족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이 없지 않았음. 어느날 가족끼리 외출할때 찍힌 사진이 인터넷 기사로 올라왔는데 거기에 가시돋친 댓글이 달려있었고 토오루가 웹서핑 하다가 그걸 발견함. 토오루는 본인 일에는 무척 대범하지만 가족 관련된 일은 기본적으로 걱정이 많고 예민한 편인데, 안그래도 사춘기인 아들이 보고 상처받을까봐 끙끙 앓다가 2세랑 단둘이 거실에서 티비보고있을때 슬쩍 말을 검


​급: 2세쨩
2세: ㅇ?
급: 요즘 학교에서 괴롭히는 애들은 없어?
2세: 아니?? 갑자기 왜?
급: 어 아니 요즘도 이지메같은거 있다길래 걱정돼서 그냥~



슬쩍 떠보고 대충 얼버무리긴 했지만 한번 부정적인 생각이 들기 시작하니 끝없이 뻗어나가서 혼자 삽질하다 결국 토비오한테도 털어놓음. 그러고나서도 아무래도 안되겠어서 어느날 2세를 조용히 부른다


​급: 2세쨩은 그런생각 안해봤어? 좀 평범한 집에서 태어났음 좋았을걸 같은..
2세: 유명하지 않은 그냥 일반인?
급: 뭐..... 것도 그렇고.... 딴애들처럼 아빠랑 엄마랑 있는....
2세: 아니전혀그런생각안하거든딱히엄마아빠있는집부러운적1도없고세상에서아빠들제일사랑해
급: ....너 되게 준비된 것처럼 말한다?
2세: 어휴 아빠가 며칠전에 갑자기 이상한거 물어보길래 토비오아빠한테 물어봤지!



철이 빨리 든 2세는 토오루아빠가 혼자만 끙끙 앓곤 한다는 걸 이미 알고 있어서 뭔가 이상하다 싶을 때마다 걍 토비오아빠한테 물어봐서 알아냄 ㅇㅇ 토비오는 어 그냥 이런일이 있었다 이것땜에 그런다 하면서 담담하게 가르쳐주곤 하니까..


2세: 아빠는 진짜 안 그렇게 생겨갖고 생각이 너무 많아. 난 아빠들 아들인거 되게 좋은데..
급: 2세쨩 ㅠㅠㅠㅠㅠ 토비오쨩이랑 둘다 완전 사랑해 ㅠㅠㅠㅠㅠㅠㅠ
2세: 악 토비오아빠!!!! 토오루아빠 또 울어!!!!



질색하고 빽 지르는 소리에 토비오가 방에서 슥 나오면서 토오루상 또 우냐고 니아빠 앞자리 바뀌고 나서 눈물 많아졌다고 한숨 폭 쉬고 ㅋㅋㅋㅋ (토오루: 그거랑 상관 없거든!!)

Posted by 슼캌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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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Tarantella (1)

HQ 2017. 5. 28. 16: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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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antella (1)

 

 

 

오이카와 토오루 x 카게야마 토비오

 

 

 

 

거장은 언젠간 스러지고, 새로운 재목의 출현은 누구나 바라 마지않던 것이었다.

 

가능성을 보이면 보일수록 무섭게 짓누르는 기대에 마지막까지 부응하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였지만, 오이카와 토오루는 다행히도 여기에 속했다. 타고난 재능과 노력, 화려한 외모와 사교적인 성격 등 그가 가진 모든 것이 한데 어우러져 이루어낸 합작품이었다. 그렇게 떠오르는 신예 피아니스트로 클래식 애호가들의 입에 종종 오르내리던 그는, 막 상한가를 치자마자 비교적 젊은 나이에 지휘자로 전향을 시도했다.

 

지휘가 그의 오랜 꿈이었음을 알 만한 사람들은 다 알았다. 본인이 협연하는 곡을 맞춰보고 나서도 리허설 시간 내내 자리를 지키며 관람한다던가 하는 등, 바쁜 스케줄 중에도 시간을 쪼개는 열정을 내비치곤 했다. 피아니스트 시절의 명성을 팔아 쉽게도 지휘판에 뛰어들었다고 손가락질하는 목소리조차도, 그는 성장을 위한 자양분으로 삼았다. 그렇다고는 해도 이런 시기가 길게 이어져서는 안 되었다. 이 우려를 가장한 비난을 불식시키기 위해, 오이카와는 연필로 스코어에 구멍을 낼 정도로 공부에 몰두했다.

 

큰 기회는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도쿄 A 악단의 정기 공연. 상임의 갑작스러운 부재가 계기였다. 어디든 한창 시즌 중이라 쓸만한 지휘자를 급히 구하기 힘들었으며, 때마침 오이카와가 도쿄에 체류해 있던 시기였으니 운때가 맞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 날 공연의 컨셉은 '낭만의 밤'이라고 해서, 차이코프스키의 경쾌하고 발랄한 폴로네이즈로 서막을 열고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번으로 꿈결과도 같은 서정을 노래한 다음, 차이코프스키 4번 교향곡압도적인 사운드로 마무리하며 청중들환호를 이끌어내는 프로그램이었다. 지휘의 길로 본격적으로 접어들기 전에도 흔히 연주되는 몇몇 곡들은 틈틈이 공부해 두었는데, 폴로네이즈를 제외한 나머지 두 곡이 바로 여기에 속했다. 그의 준비성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수없이 올라 본 무대였지만 익숙한 피아노 앞이 아닌, 포디움 위에서 내려다보는 광경은 너무나도 생경했다. 지금은 기억조차 흐릿한 어린 시절, 처음으로 무대에 올랐던 압박감과 설렘이 아마 이렇지 않았을까. 약간의 감상을 뒤로 하고 오이카와는 메인 홀을 가득 채운 관객들 앞에서 처음으로 지휘봉을 들었다. 비교적 친숙한 곡들로 구성되어 있어 냉정한 비평이 내려지기 쉽다는 리스크가 있었으나 기대 이상의 훌륭한 공연이었다. 오이카와의 성공적인 데뷔는 비평가들과 팬들을 흥분시켰고, 일본 내에 국한되기는 했지만 객원으로 여러 오케스트라에 불려다니며 지휘자로서의 커리어를 새롭게 쌓아나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 B악단에 수석객원으로 취임하기에 이르렀다. A악단과 더불어 100년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일본을 대표하는 오케스트라 중 하나였다. 

 

 

-

 

메이저급 악단의 수석 연주자들이 으레 그렇기는 하지만 B악단의 콘서트마스터는 특히 유명했다. 카게야마 토비오. '전무후무한', '백 년에 한 번 날까말까 한' 바이올린 신동으로 추켜세워지며 세계 무대에도 불려다니며 바쁜 어린 시절을 보냈던 천재 바이올리니스트였다. 많은 연주자들이 엘리자베스 콩쿠르 1위니, 부조니 콩쿠르 1위 없는 2위니 하며 수상 경력을 대대적으로 홍보하는 것과는 대조적으로, 워낙 어릴 때부터 유명하던 그의 수상경력은 깔끔하게 제로였다. 카게야마 토비오라는 이름에 더 이상의 수식이 필요치 않았던 탓이었다. 굳이 덧붙이면, 호리호리한 키에 제법 단정하게 생긴 얼굴이 스타성을 더했다는 것 정도일까.

 

그러나 30대에 접어들면서 그는 돌연 스타 연주자 생활을 청산하다시피 했다. '이제는 조금 쉬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를 댔지만, 어린 시절부터 20년 넘게 이어진 혹독한 스케줄에 지쳐버릴 만도 하다며 사람들은 의외로 쉽게 수긍해 주었다. 그래도 아예 음악의 끈을 놓지는 않고 도쿄 B악단의 단원으로 들어간 것이 대략 삼 년 전의 일로, 그 뒤로는 가끔 국내 오케스트라와 협연을 하거나 앙상블의 일원으로 활동하는 것이 전부였다. 해외 순회공연은 커녕 새 음반을 내는 등의 활동조차 일절 없었으므로, 해외 팬들은 이를 퍽 아쉽게 여겼다.

 

따라서 오이카와 토오루가 카게야마 토비오의 존재를 모를 리는 없었다. 사실, 분야는 다르긴 해도 자신보다도 더 빠르게, 더 멀리까지 이름을 떨친 이 동갑내기에게는 남몰래 경쟁의식마저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카게야마 토비오의 경우에는... 이 새파랗게 젊은 지휘자가 온다고 했을 때부터 심기가 불편했다. 피아노는 뭐 나쁘지 않게 쳤던 것 같긴 한데, 노상 잔뜩 힘주어 세팅한 머리에 헤실헤실 웃고 다니는 꼴이 영 마음에 안 들었다. 무엇보다도, 예전부터 묵직한 고전 레퍼토리에 강한 B악단의 분위기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그들의 첫 만남은 사전미팅의 성격을 띤, 오케스트라의 주요 인사들 몇몇만 모인 식사 자리에서였다. 상성이 안 맞을 것은 이미 어느 정도 각오하긴 했다던 기획팀장도 이 날을 회상하면 '아, 망했다'고 생각했다며 허허 웃을 정도로 두 사람은 첫 만남부터 여과없이 부딪혔다. 사실 스타일이 안 맞는건 둘째 치더라도 서로 기싸움을 거는 기운이 역력했다. 네가 아무리 오이카와 토오루라도 지휘에 있어서는 병아리 아니냐는 카게야마와, 네가 아무리 카게야마 토비오고 콘서트마스터라고 해도 결국 음악을 이끌어가는 건 지휘자인 내가 아니겠냐는 오이카와의 대결이었다.

 

지금이야 프로그램에 이말저말 참견할 입장은 아니긴 하지만 사실 오이카와는 다소 실험적인 곡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이 겉멋만 잔뜩 들었음이 분명한 초짜 지휘자는 벌써 언젠가는 쇤베르크니, 바르톡 같은 걸 하고 싶다며 기어이 카게야마의 미간을 찌푸리게 했다.

 

"요즘 젊은 지휘자들은."

 

자기소개할 때를 제외하고는 제 앞에 놓인 접시만 묵묵히 비우고 있던 그가 기어이 한마디 꺼냈다. 30대 초반의 나이에 어울리지 않게 부러 근엄하게 낸 말투다.

 

"겉멋만 들어서 제대로 소화도 못할 레퍼토리 들고 와서 망쳐놓곤 하더라구요."

 

심플한 꽃 몇 송이로 세련되게 장식한 흰 테이블 주변이 찬물이라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조용해졌다.

 

"아, 그런 경우야 많죠. 제대로 소화할 수 있는 오케스트라가 몇 없을 테니까요."

 

아무래도 오이카와가 숙이고 들어가서 끊어질 것으로 예상했던 긴장의 끈은 더욱 팽팽해졌다. 당황을 감추지 못한 누군가가 흡, 하고 들이쉬는 숨소리 외에는 포크와 나이프, 하다못해 물컵 달그락거리는 소리조차 뚝 멈췄다.


"혹시 가벼워보이는 인상이 컴플렉스라 난해해 보이는 음악에 집착하는 건가요?"

"약간 무례하시긴 했지만 그거 칭찬으로 알겠습니다."
"알고는 계시겠지만 저희 특기가 모차르트나 바흐인데... (카게야마는 이 대목에서 잠시 말을 끊고 오이카와를 위아래로 쓱 훑어보았는데, 기본적으로 무덤덤한 그가 누군가를 불쾌하게 하기 위한 노골적인 제스처도 취할 줄 안다는 사실은 매우 놀라웠다) 오이카와 씨랑 어울릴지는......."

 

언성만 높이지 않았다 뿐인 날선 대화가 핑퐁처럼 오갔고, 이러다 행여나 큰일날까 걱정한 사람들이 허겁지겁 자리를 마무리했다. 최악의 첫인상이었다.

 

 

 

Posted by 슼캌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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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 그때의 아카시는 굉장했지. 가위를 이렇게 슉 하고 ㅋㅋㅋㅋㅋㅋㅋ"
"...그만둬, 다이키."

술만 들어가면 자신의 예전 흑역사를 끄집어내 안주거리 삼는 저 새끼를 대체 어째야 좋을까. 아카시는 불편한 심기를 명백하게 드러내면서 도끼눈을 뜨고 아오미네를 노려봤지만, 예전에 비하면 독기가 많이 빠져서 그런지 좀처럼 효과를 발휘하진 못한다.

"아니 정말로 그거 후리하타 군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았을 겁니다."

여기에 쿠로코가 무심한 듯 한마디 툭 던지는 걸로 가세했다. 그걸 기폭제로 아카시의 만행과 망언들이 여기저기서 하나둘씩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아니 저 바보들은 공부는 하나도 기억 못하면서 남이 옛날에 얘기했던 걸 뭐 저따위로 잘 기억하는지. 그와 동시에 불과 몇 년 전의 중2병 작렬하던 자신을 죽이고 싶었다.

"그러고보니 저, 모못치 남친이 엄청나게 존재감있는 사람이라 놀랐슴다!"

화제는 느닷없이 대학에 들어가고 첫 연애를 시작한 모모이로 넘어갔다.

"아 그래 나도 그건 좀 놀랐다고. 사츠키 녀석, 옛날에 테츠 엄청 쫓아다녔었는데 그새 취향이 변한건지. 그냥 테츠라서 좋았던건가?"
"다이쨩, 다 지나간 얘기 꺼내고 그래!"

흑역사까지는 아니지만, 지금으로서는 상상도 못할만큼 온몸으로 좋아좋아좋아좋아v를 표현하던 어린시절을 떠올려보면 좀 부끄러웠는지 모모이가 바락 성질을 냈다.

"모모이 상한테는 그저 지나간 일일 뿐인가요? ..조금 섭섭하네요."
"아, 아냐 테츠군! 테츠군은 여전히 멋져!!!!!!"

짐짓 서운한 체하는 쿠로코에게, 모모이는 화들짝 놀라 양손을 내저으며 필사적으로 변명했다. 저거, 누가 봐도 그냥 놀리고 있는 건데... 그렇습니까, 안심이네요. 하는 쿠로코의 말에 (키세: '쿠로콧치 그 발언은 뭡니까 어장관리인 건가요...') 모모이의 눈에서 하트가 뿅뿅 나가는 꼴을 본 기적의 세대 전원이 한마음으로 눈빛을 교환했다. '야 쟤 아직 안끝났어.' 미도리마가 안경을 치켜올리며 입을 열었다.

"....그러니까 너는 안된다는 거다 모모이.
그리고 아오미네, 과거를 따진다면 너도 만만치 않다는 거다."
"그러게. 나를 이길 수 있는 건 나뿐이라니 정말이지 대단한 자신감이야 다이키."
"윽..."

중2병 느낌의 흑역사로 치면 아카시를 따라갈 자가 없지만 주변사람 여럿 괴롭게 만들었던 걸로 치면 아오미네가 단연 최강이었다. 아까까지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던 아카시와 모모이를 필두로 하여 모두들 봇물처럼 쏟아내는 자신의 흑역사에, 죄 많던 당사자는 화도 못 내고 그저 머리카락을 쥐어뜯으며 괴로워할 뿐이었다.

"그만해라..... 고등학교 농구부 동창회랑 분위기 똑같잖아....."
"다이쨩이 나빴어. 어떻게 시합에 지각할 수가 있어? 지금 생각해도 정말 믿을 수 없어!"
"나 참, 정말이지 인간 실격인 것이다."
"뭐야? 이 오하아사 럭키아이템 바보가!"

꾹꾹 참고있던 것이 인간 실격이라는 단어에 확 터져버린 모양으로, 아오미네의 턴이 시작됐다. 그렇다. 기행으로 따지면 미도리마는 기적의 세대 안에서도 독보적인 존재. 럭키 아이템에 얽힌 일화만 해도 수십 개에 리어카 통학, 왼손 테이핑 등등 파도 파도 끝이 없는 소재의 화수분이었다. 만신창이가 되도록 얻어맞은 미도리마가 화살을 키세에게 돌렸다.

"남자가 우는 건 태어나서 세 번이라고 했지. 키세, 내가 알기로 너는 고등학교 때 이미 세 번을 다 썼다는 것이다."
"그러네요. 우리 학교랑 연습시합에서 처음으로 진 때가 그 시작이었죠."
"아아, 1학년 때 우리한테 지고 나서도 질질 짰지. 뭐, 그때의 분한 기분은 나도 이해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우는 게 뭐냐 가오 안 서게. 안 그러냐 모델 씨?"
"....그만둬주세요 진짜....."

3학년 때부터는 안 울었다구요.. 그렇게 조그맣게 덧붙인 키세가 양손에 얼굴을 묻었다.


-
배구 전에는 농구했는데 그닥 연성을 하진 않았었고... 게다가 미완성.... 그래도 이런 후일담 분위기 좋아함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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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슼캌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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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프레이저 x 휴

~ 아무도 안 궁금한 프레휴 내 안의 동인설정 ~

최고의 요리사가 되리라는 야망을 품고 혈혈단신으로 이멘 마하에 흘러들어온 프레이저는 열다섯 살 때부터 로흐 라오스에서 고든의 조수로 일하기 시작했다. 휴는 그 당시 새로운 기술을 배우기 위해 마을을 떠나 있었기 때문에, 몇 년간 둘은 서로의 존재를 모르고 살았다. 아픈 아버지 대신 공방을 잇기 위해 휴가 다시 이멘마하에 돌아왔을 땐 그의 나이 스물여섯, 프레이저는 이제 갓 스물이었다.

먼저 반한 쪽은 당연히 프레이저. 어른스러운데다 묘한 매력을 풍기는 휴는 그가 그동안 봐왔던 - 하나같이 착하긴 하지만 어쩐지 허당 같은 - 마을 사람들과 대비되는 신선한 존재였다. 성실한 노력파이긴 해도 좀처럼 성장하지 않는 자신과는 달리, 젊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최고 수준의 인형 장인으로 대접받는 휴를 동경한 프레이저는 그의 뒤를 졸졸 따라다녔다. 누군가가 자신에게 먼저 다가오는 상황은 난생 처음이라 당황하던 휴도 언제부턴가는 그를 편하게 대하며 가깝게 지내기 시작했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프레이저의 동경이 애정으로 바뀌면서 한바탕 파란이 휩쓸었다. 귀여운 연하남의 쉴새없는 애정공세에 결국은 백기를 든 휴. 하지만 연애는커녕 친밀한 관계 자체를 제대로 맺어본 적 없는 그는 어딘가 비뚤어진 태도로 프레이저를 대한다. 한마디로 '나는 따뜻한 도시 남자, 하지만 내 남자에게는 차갑겠지.' 휴가 알게모르게 독설을 늘어놓든 말든, 신경질을 내든 말든 전부 헤헤거리면서 받아넘기는 프레이저는 그야말로 멘탈 갑. 사실, 남들에게는 절대 보여주지 않는 그런 모습들을 오직 자신에게만 풀어놓는다는 점이 굉장히 마음에 든다. 어쨌거나 휴는 그런 그에게 내심 의지하지만 그런 속마음은 어른의 기술로 교묘하게 감추고 있다. 아마 프레이저는 어렴풋이나마 그걸 알고 있는지도. 휴에게서 언뜻언뜻 약한 모습이 비칠 때마다 자신이 지켜줘야 한다고 굳게 다짐하곤 한다.

프레이저는 요 2년간, 한 달에 한 번 월차를 내고 반호르로 향하는 휴의 마차를 몰아왔다. 고든은 네놈도 참 지극정성이라고 구시렁대면서도 그냥 보내준다.

휴는 프레이저가 자신을 위해 열심히 만든 음식을 먹으면서 단 한 번도 맛있다고 한 적이 없다. 그러잖아도 입맛이 까다롭고 빈말하는 성격이 못 되는 데다가, 일단은 기본적으로 프레이저에게 그리 따뜻하지 않기 때문. 그럭저럭 먹을만하다고 생각할 때 내뱉는 "실력이 많이 늘었군요" 정도가 최고의 찬사다.
현재 프레이저 스물둘, 휴 스물여덟

프레이저: 잘 잤어요? 휴 씨.
휴: 프레이저 군, 안녕. 오늘도 쓸데없이 건강해 보이네요.



2. 휴 x 아이던 (휴 -> 아이던)

인형공방 주인 휴가 온화한 미소를 띄우며 내민 건 하얀 털로 뒤덮힌 깜찍한 눈토끼 인형이었다. 아이던은 머뭇거리며 그 손바닥만한 인형을 받아들었다.

".......감사합니다. 그런데 이걸 왜 제게...?"
"닮았다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검을 쓰는 사람이라곤 해도 머리가 나쁜 편은 아니라고 자부했었는데, 이 상황에서는 도무지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모르겠다. 간신히 머리를 쥐어짜내 생각해냈다는 대답이,

"머...머리카락 색깔이... 말입니까?"

고작 이거라니.
그런데 정말, 대체 어디가 어떻게 닮았다는 건지 눈이 삐었냐고 화를 낼수도 없고, 그렇다고 열댓살 먹은 소녀들처럼 어머 휴 씨 뭐예요 이러고 까르르 웃어넘길 수도 없는 노릇 아닌가.

"귀여운 점이요."

어떤 상황에서든 평정심을 잃지 않기로 유명한 이멘 마하 근위대장 아이던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평정심을 잃기는 그의 주변에서 함께 보초를 서고 있던 근위병들도 마찬가지였다.



-
이것도 옛날 글.... 이멘마하의 인형사 '휴' 엄청 좋아했었고 프레휴 사랑했었어요 으하하하 얘 지금보니 약간 쿠니미 닮았어 살짝 영산끼도 있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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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아, 나 마나허브 좀... 곰이 다 쳐먹고 키워드도 안줬어ㅠㅠ"
"이 븅딱아! 아직도 그거하나 못구해서 나한테 질질 짜? 알비나 돌아 임마, 나 바빠!"
"너무해! 이스텔 누나가 필요하다고 했을 땐 냉큼 갖다바쳤으면서!"
"아 진짜 이놈새끼 봐라? 풀셋팅 윈밀로 맞아볼래?"

힝.. 맨날 저런 식이야!
오늘 돌았던 미션에서 혼자만 하도 죽어대서 신경이 머리끝까지 곤두서있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너무한다. 그게 뭐 내탓이야?

"이 폐인! 만년쪼렙! 눈새! 아얏 왜 때려!! 으아아앙ㅠㅠㅠㅠㅠㅠㅠ"
"오빠, 적당히 좀 해라. 꼬맹이 상대로 뭐하는 짓이야?"
"윽..."

아싸 양털누나 감사ㅠㅠ 먹을대로 먹은 나이를 무기로 집안의 가장 행세를 하며 군림하고 있는 큰형도, 내가 태어나기 전 아주아주 옛날부터 큰누나한테만은 약했다고 한다. 자기 말로는 아무래도 맨 처음 생긴 여동생이어서 그럴 수밖에 없다나. 그럼 맨 나중에 생긴 남동생한테는 대체 왜 이러는 건데!

"기대하는 게 많아서 그래. 다른 아이들이랑은 달리 너한테는 이것저것 시키고 있잖아? 우리한테는 강하게 크길 바라지도 않았거든."

언젠가 밖에서 형한테 또 대판 후려맞고 엉엉 울면서 집에 들어간 날, 엘 누나가 커다란 손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어주면서 그렇게 말하긴 했었다.
...누나, 그렇게 다 좋게좋게 생각하면서 순딩이로 살다간 나중에 나쁜 남자한테 걸려서 신세 망칠지도 몰라. 누나는 요 맹랑한 것, 웃으며 등을 찰싹 쳤다. 얽. 누나, 살살 친다고 친거긴 하겠지만 체격차가 체격차다 보니 척추가 으깨지는 것 같은 고통이......
누나가 하는 말을 전혀 모르겠는 건 아니다. 그래도 아직은 그런 깊은 속마음보단 겉으로 보이는 사랑이 절실한 나이인데 말야.

큰형은 고새 집을 나갔다. 어디서 초원을 어슬렁거리는 곰한테 분풀이나 하고 있을 테지. 하루종일 돈벌러 고생하다 들어온 사람한테 마나허브를 조른 게 조금 미안하기도 하다. 그래도, 나도 그 정도는 내 힘으로 구하고 싶었단 말야, 게다가 나도 할만큼 했다고! 어렵게어렵게 알비던전을 몇 바퀴 돌아서 겨우 네 개를 구해서 갔는데, 망할놈의 곰은 우적우적 잘도 씹어먹어 놓고는 키워드고 뭐고 없이 끝. 그야말로 꿀꺽이다. 이런 젠장!!!! 너무 지쳐서 다시 던전을 돌 기력도 없어 비척비척 집으로 돌아가 그제서야 겨우 형한테 부탁해본 건데.

속으로 구시렁대고 있는데 툭 하고, 뭔가 축축한 뭉치가 머리를 가격했다. 아 뭐야 또!! 버럭 소리부터 지르면서 무릎 위에 떨어진 푸르딩딩한 물체에 시선을 옮겼다.
아, 허브..

"가져가. 너 잘 먹는다고 한꺼번에 막 줬지? 이런건 한뿌리씩 나눠서 조금씩 똥줄태우면서 주는 거야."
"아..."
"이놈의 곰새끼가 이제 배가 불렀나. 어디서 밀당질이야..."

투덜대면서 얼굴도 안 보여주고 다시 밖으로 나가는 형은 부끄러워하고 있는 게 분명하다. 저럴때보면 좀 귀여운듯ㅋㅋ

"형아, 고마워!!"

ㅋㅋㅋ움찔한다 움찔ㅋㅋㅋㅋ
놀려줄까 싶었지만 또 맞을까봐 그냥 참았다.


-
어휴 이것도 고대유물... 청춘을 갈아넣었던 마비노기 u_u 한동안 잊고 살다가 넥슨 사건 이후 계삭해버렸지만 키웠던 아이들 하나하나 다 잊지 못하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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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E] 위자x위자

예전 2017. 5. 3. 22:13


"프로텍션 필드!"

낡은 청동 스태프에서 붉은 기운이 흘러나와 빈사상태의 청년을 휘감았다. 안개같은 질감의 기운이 선명한 구체를 형성해 청년을 가둔 꼴이 되자 잔뜩 흥분해서 달려들던 마물들이 주춤했고, 별안간 허공에서 쏟아져내린 빛줄기는 까맣게 떼지어있던 그것들을 순식간에 재로 만들었다. 곱게 자란 도련님같이 생긴 얼굴과 어울리지 않게 허름한 롱 코트를 걸친 청년이 이윽고 눈을 떴다. 분명히 이 일대는 아수라장이었던 것 같은데 지금은 어째서인지 개미새끼 한마리 보이지 않는다- 기절해 있었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상황 종료라, 이건가. 게다가 이제 두 번 다시 보고싶지 않았던 그 지긋지긋한 보호막까지 쳐져있는 걸 보니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오른다.

"...필요없다고 했잖아, 이런 거!"
"그 말 진심으로 하는 건가? 네가 이곳에서 쓰러진 것만 해도 벌써 열세 번째다, 아마 셀 정신도 없었겠지만.
-쓸모없는 녀석."

오만함이 뚝뚝 떨어지는 말투로 한차례 자존심을 뭉개트린 백색의 마법사가 마지막 일격을 날리고 홱 돌아섰다.

".....!"

분하다. 반박할 건덕지라도 있으면 속이라도 시원할 텐데, 지금처럼 전적으로 보호받고 있는 주제에 큰소리쳐봤자 우스워질 뿐이다.

좀처럼 제 몫을 해내지 못하는 자신을 답답해하던 당주가 휘하에 있는 고등 마법사에게 특별 지도를 부탁했던 건 지난달의 일로, 처음 만났을 때부터 탐탁찮다는 표정으로 내려다보는 것이 영 맘에 안 들었는데 역시나. 사람을 깔보는 태도가 온몸에 배어있는 이 마법사는 꿈과 모험을 찾아 집을 뛰쳐나온 전직 도련님과는 상성이 더럽게 안 맞았다. 무시하지 마, 나도 집에 가면 귀한 아들이란 말이야 시발!

아무튼 이 어리버리 견습 마법사가 스파르타식 교육의 일환으로 생전 보지도 못했던 마물들을 하루에도 수백 번 수천 번 마주치곤 했으니 목숨 부지하는 게 용했다. 그간 죽을 고비도 셀 수도 없이 넘겼겠다, 이제 좀 발전이 있을 법도 한데. 아직까지도 이 녀석 발끝에도 못 미치고 있다니 분하기 짝이 없다. 한 번 그 얘길 했다가 '센스도 전무한 주제에 고작 한 달로 나를 따라잡을 생각을 하다니 심히 불쾌하군' 하고 핀잔만 듣긴 했지만, 여전히 그의 등 뒤에 숨어 통하지도 않는 공격을 퍼붓다가 일격에 나가떨어지기 일쑤인 자신이 한심해 죽을 것 같은 기분은 어쩔 수 없었다. 한마리 상대하기도 버거운 녀석들이 그가 한 번 스태프를 휘두르면 그렇게 허무하게 스러질 수가 없었다.

"젠장! 내가 당신보다 일찍 태어나기만 했어도...!"
"네가 결정할 수 없는 일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불평할 시간이 있다면 스펠이나 연구하지 그래."

저 성격나쁜 스승은 여유는 여유대로 넘치는 주제에 어떻게 한 마디도 져 줄 생각을 않는다. 악 짜증나!!!

"강해져 주겠어, 절대로! 엄청나게 강해져서 너 같은 녀석 따위 잘근잘근 밟아버릴 거야!!"
"흥."

저만치 앞서있던 마법사가 발걸음을 뚝 멈추더니 몸을 돌렸다. 분명히 꽤 거리가 떨어져 있었던 것 같은데 어느새 그는 눈앞에 무시무시한 위압감을 발산하며 서 있었다. 인정하고 싶진 않지만 이렇게 마주보고 있으면 항상 움츠러들고야 만다. 그래, 이런 점도 진짜 분하단 말이지-....

"좋은 마음가짐이다, 애송이. 내가 이런 돈도 안 되는 곳에서 구르고 있는 건 순전히 그게 목적이니까-"

갑작스레 목덜미에 느껴진 차가운 금속의 느낌에 저도 모르게 헉 하고 숨을 들이쉬자, 잔뜩 굳은 그 꼴을 바라보던 마법사가 만족스러운 얼굴로 겨누던 스태프를 거두었다.

"전력을 다해 강해져라. 너를 훈련시키고 있는 지금이 시간낭비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있도록."




-
그라나도 에스파다라는 게임을... 아시나요....?
n년 전 쪼렙 위자드 키우면서 답답하던 심경을 풀었던 글인데 맘에 들어서 옮겨봄. 정말 위자횽은 다시 봐도 약쟁이같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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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이카게 너무 사귄다

HQ 2017. 5. 1. 00:46

"카라스노 주장, 미안한데 토비오 좀 빌려갈게."

체육관 문을 기세 좋게 열어젖힌 게 무려 '그' 오이카와 토오루라는 사실이 적잖이 충격적이었던 탓일까. 엔노시타가 어어, 네에...... 하고 답지않게 얼빠진 대답을 흘리는 사이, 오이카와는 더 얼빠진 얼굴을 하고 엉거주춤 서있는 옛 후배를 향해 척척 걸어갔다. 토비오, 따라와. 그 매끈한 얼굴에 띄운 표정은 그야말로 비장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에, 불청객의 갑작스런 방문이긴 하나 일단 용인하는 분위기가 되어 버렸다. 카게야마는 잠자코 체육관 바깥으로 따라나왔다.

"연락도 없이 왜...."

고등학교 졸업식 이후 처음 보는 카게야마는 이제 눈높이가 자신과 얼추 비슷해 보였다. 건방진 토비오쨩, 그새 이만큼이나 자랐다고?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고등학생이었던 제가 이런 말 하기는 좀 뭣하지만, 그러고보면 이 나이대 애들한테 석 달이란 그리 짧은 시간이 아니긴 했다. 혹시 마음이 변하기에도 충분한 시간이 아닐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오이카와는 초조해졌다.

앓느니 죽지.

"너 그냥 뒀다간 누가 채갈까봐 너무너무 걱정돼서 왔어."
"네...?"

그래, 저 멍청한 얼굴. 저 멍청한 얼굴 진짜! 저게 뭐가 귀엽다고 자꾸 생각이 나서는!

졸업식날 오이카와를 찾아온 카게야마는 오랫동안 좋아했다며, 이제 마음을 전했으니 됐다고 후련한 얼굴을 했다. 도쿄로 진학한다는 건 또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타지에서도 건강히 지내시라며 다시는 안 볼 사람처럼 굴더니 꾸벅, 인사를 하고는 휘적휘적 돌아갔더랬다. 지금, 뭐라고....? 이 폭탄 선언을 오이카와의 뇌내 회로에서 겨우 처리해냈을 때, 그 장본인께서는 이미 유유히 사라지고 없었다.

여기까지는 뭐 흔한 학창시절의 추억으로 아름답게 묻어둘 수도 있었겠지만.

대도시에서 즐기는 새내기의 캠퍼스 라이프를 만끽해도 모자랄 판에 옛 후배가 머릿속에 불쑥불쑥 나타나 헤집어놓는 건 정말이지 분통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정말이지 더럽게 신경쓰였다, 인정하고 싶진 않았지만. 게다가 이렇게 남을 뒤집어놓은 망할 후배놈은, 마음을 전했으니 됐다는 그 말이 정말로 사실이었는지, 계절이 바뀌도록 전화는커녕 메일 한 통 보내는 법이 없었다. 장난해 지금? 두 달을 꼬박 머리를 쥐어뜯으며 괴로워하던 오이카와에게 이와이즈미가 내린 처방은 단순하고도 명쾌했다.

너도 좋아하는 거 아냐? 고백하면 되겠네.

농담이 아니긴 했지만 처음에는 덮어놓고 '이와쨩 미쳤어?!' 하고 펄쩍 뛰며 호들갑을 떨 것을 예상했기 때문에, 오이카와가 잠깐의 침묵 끝에 순순히 미야기에 다녀오겠다고 말한 것은 대단히 놀라운 일이었다. 연애감정이란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리고 지금,

"토비오쨩을 좋아한다는 소리야."

그렇게 놀려대고 자존심을 세우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는 의외로 올곧은 고백. 카게야마가 믿을 수 없다는 듯 눈가를 벅벅 문질렀다. 얘 그냥 놔두면 볼까지 꼬집어 볼 기세네. 오이카와가 슬쩍 손을 뻗어 그의 손목을 잡아 내렸다. 서서히 차오르는 기쁨으로 빛나기 시작한 새파란 눈동자는 배구공을 손에 들었을 때의 그것이었다. 마주보는 얼굴들에 웃음이 번졌다.

Posted by 슼캌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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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나타 쇼요 17세, 요즘의 고민. 애인이 저를 피합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키스를 피하는 것 같습니다.

저를 고민에 빠뜨린 장본인은 바로 카게야마 토비오. 같은 배구부의 파트너입니다. 대체 왠지는 모르겠는데, 한때는 같이 흥분하는 시간이 많은 탓에 착각이 든 것 뿐이라고 현실부정을 하던 때도 있었습니다만, 어쨌든 언제부턴가 둘 사이에 달착지근한 감정이 오가는 것을 어렴풋이 눈치채고는 있었습니다. 그리고 2학년에 막 올라간 어느 날의 하교길에 꽃비가 내렸습니다. '카게야마, 좋아해.' 새까만 머리카락에 흰 꽃잎을 잔뜩 붙인 채로 저만치서 나를 바라보는 녀석이 너무 예뻐서 반쯤 홀린 듯 흘려버린 고백을, 고맙게도 그는 외면하지 않아 주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연애는 의외로 순탄하게 흘러갔다, 고 생각합니다. 첫 키스는 사귄지 일주일쯤 됐을 때 했는데, 키스란 게 원래 그렇게 기분좋은 건지 아니면 상대가 그 녀석이라 그런 건지 비교 대상이 없으니 도무지 알 도리는 없습니다. 어쨌거나 그 뒤로는 체육창고나, 화장실이나, 하교길의 으슥한 골목이나 하여튼 보는 눈만 없으면 일단 입술부터 맞대곤 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최근 며칠은 그럴 분위기가 되면 카게야마 쪽에서 먼저 자리를 피하는 패턴이 반복되었던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거의 대부분 제가 먼저 졸라댔던 것 같긴 해요. 그동안 싫은데 억지로 키스했던 건가? 아니 애초에 억지로 사귀었던 건가? 거절하면 내가 풀죽어서 배구도 못하게 될까봐...? 이렇게 생각을 많이 해본건 태어나서 처음입니다. (카게야마 이자식, 나한테 무슨 짓을 한 거냐고...) 머리가 펑 터져버릴 것 같습니다. 게다가 여기까지 생각하자 너무나 괴롭고 슬픈 기분이 듭니다. 아무래도 가볍게 넘길 문제는 아닌 것 같습니다.




주말 데이트라고 해봤자 거진 배구 연습이었지만, 이번에는 어색해하는 녀석을 카페로 끌고 들어갔습니다. 주스 한 잔씩을 놓고 얌전히 마주앉아 있는 시간이 퍽 어색합니다. 시선이 얽히다가, 엇갈리다가, 마주보았다가, 피했다가. 저는 본론으로 들어가기 위해 침묵을 깼습니다.


"카게야마 군, 할 말이 있습니다."
"...뭐야 그 말투는."
"나... 좋아해?"
"좋아하지 않으면 사귈 리 없잖아 바보야."


이 한 마디에 저는 온몸의 긴장이 쭉 풀리는 안도감을 느꼈습니다. 이거면 모든게 충분하다는 생각이 들 뻔도 했지만, 이 일의 발단을 간신히 기억해내고 단상에 올렸습니다.


"카게야마... 키스하는 거 싫어?"
"아니."


즉답!


"그.. 그럼 피하는 듯한 건 내 착각..입니까."
"......."


드물게 말문이 막힌 그는 한참 우물쭈물하다가 말을 꺼냅니다.


"좋다고 자꾸 하다보니까 중독될까봐........ 무서워져서."
"네??"
"그, 담배 같은 것도 중독되면 자기 의지로 끊기 힘들다며. 그런거 무섭단 말야..."


으아아아아아아악!!!!! 여기가 카페가 아니라 아외였다면 이 마음의 소리를 그냥 밖으로 흘려버렸을 겁니다. 카게야마 주제에 너무... 너무 사랑스러운 거 아닌가요?! 저는 적당히 구석에 자리잡은 제 선견지명에 감탄하며 귀여운 소리를 내뱉는 애인의 입술을 대략 일주일만에 맛보았습니다. 오늘은 사과주스 맛이네요. 너무 좋아서 머리가 핑 돌아버릴 것만 같습니다.

키스는 몸에 나쁘지 않으니까 중독돼도 괜찮으며 어차피 내가 매일매일 해줄테니 상관없다, 는 다소 내용이 부실한 설득에도 녀석은 그런가, 하며 넘어가 주었습니다. 아, 정말이지 내 애인이 이렇게 귀엽습니다......

Posted by 슼캌처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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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알고 지내거나 친숙한 사이에서는 상대를 성이 아닌 이름으로 부르기도 한다. 물론 이것은 개인차가 작용하는 부분으로, 쿠니미는 두 살 위의 쌍둥이 누나를 빼면 이름으로 누군가를 부르는 일은 없었다(그나마도 쌍둥이가 아니었다면 큰누나, 작은누나라고 불렀을 터였다). 하물며 중학교 때부터 늘 붙어다니던 킨다이치조차 유타로라고 부른 적이 없었다. 호칭에서 묻어나는 친밀함에 연연하는 성격도 아닌데다가, 부르는 것도 불리는 것도 어쩐지 낯간지러웠다. 그래서 자신의 앙숙을 두고 태연하게 우시와카쨩이니, 토비오쨩이니 하던 오이카와에게는 순수하게 감탄하곤 했었다.


그리고 지금.


"아츠무 선배!"


카게야마였다. 볼일이 있어 나온 센다이 역에서 그를 맞닥뜨릴거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어디 그 뿐인가. 마치 배구공이라도 보는 듯한 생기 넘치는 얼굴을 하고 누군가를 바라보고 있는 것도, 그 누군가를 성이 아닌 이름임에 분명한 호칭으로 부르는 것도, 모두 생각지도 못한 일 투성이였다. 그러므로 쿠니미 또한 평소의 그답지 않게 거의 눈이 가려질 정도로 후드를 눌러쓰고 슬그머니 그 근처를 맴돌았다.


얼핏 들리는 대화 내용을 미루어 짐작하면 그들은 적어도 지난 봄고 대회에서 마지막으로 만났으며, 그는 먼 곳에서 카게야마를 만나러 여기까지 온 듯했다(일부러 여기까지 와 주시고 죄송합니다, 라는 말이 분명하게 들렸다). 그리고 화려한 금발 투블럭 컷을 한 관서 말씨를 쓰는 그 낯선 남자는, 조잘거리는 카게야마를 향해 거의 무슨 꿀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그러고보니 카게야마가 누군가를 이름으로 잘 부르는 타입이었냐고 하면 키타이치 시절은 물론 지금의 카라스노에서도 그런 일은 없었을 터였다. ...아마도.


아 환장하겠네 진짜.


그들이 유유히 역사를 떠나 자취를 감춘 뒤에도 쿠니미의 어지러운 머릿속은 전혀 정리되지 않았고, 그저 토비오가 자신을 아키라라고 불러줬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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